최근 2주간 인생에서 몇 안 될 자존감의 암흑기를 겪었다.
그리고 내가 살아온 환경, 주변 사람들, 가족, 교우관계, 직장들까지 되짚어보고 깨달았다.
그 모든 것이 철저히 울타리 안에서 이루어졌던 것들이라는 걸.
발단은 단순했다.
개발과 창업이라는 목표를 향해 달려가던 내가, 굳이 ‘망했을 때’를 걱정하며 플랜 B를 마련해야 한다는 강박 속에서 주말 출근 직장을 구한 것이다. 처음에는 깊이 생각하지 않았다. 오랜 시간 혼자 프리랜서로 일하고, 창업을 준비하며 느꼈던 소속감의 결핍을 채우고 싶었다.
"주 2일 출근, 겸직 가능".
사업과 병행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큰 고민 없이 그 정도만 보고 결정했다.

하지만 단 2주 만에, 나는 철저히 모자란 사람이 되었다.
이번 직장에서 내가 마주한 것은, 하루 벌어 하루를 도박으로 탕진하는 사람들의 세계였다. 나는 그들의 비위를 맞춰야 했고, 웃어주어야 했으며, 심지어 친절함에도 불구하고 욕을 들었다. 그 손님들은 항상 화나 있었고, 돈을 잃은 분노를 해소해줄 대상이 필요해보였다. 예비 대표로서 사색하며 개발에 몰두하는 평일과, 전혀 다른 세상에서 일해야 하는 주말 사이의 괴리감이 너무 컸다. 그리고 깨달았다. 나는 내 삶에서 이런 세계를 마주할 필요가 없었음을.
함께 일하는 사람들 사이에서도 갈등이 끊이지 않았다. 모두가 스트레스를 받는 환경이었다. 내가 겪어본 그 어떤 직장, 심지어 대학 시절의 단순 노동 아르바이트(쿠팡)보다도 힘든 분위기였다. 그때는 적어도, 앞에 놓인 택배박스에만 집중하면 되었다. 그러나 여기는 아니었다. 나는 끝없는 도박중독자를 마주해야 했고, 나를 보호할 방법조차 없었다. 심지어는 직원끼리도 단돈 만 원짜리 짬뽕에 생색내는 환경이었다. 영어 능력을 이용해 시급 4만원을 받고 일하던 나는 도무지... 그들의 정서에 적응 할 수가 없었다. 하루에 벌 수 있는 돈을 한 달 간 욕 먹으며 벌어야 했다.
내가 걸어온 길이, 내가 공부해온 것들이, 내 주변 사람들이 얼마나 소중한 것이었는지. 그리고 무엇보다, 내 자존감과 프라이드를 지킬 수 있는 직업을 갖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 절감했다. 훨씬 더 정제된 사람들과 함께하며 인정받는 삶을 살아왔는데, 이제는 욕설을 들으며 서비스를 제공하는 위치에 서 있는 내 자신이 버겁더라.
자존감은 끝도 없이 무너지고, 나를 키워주신 부모님께 죄송한 마음까지 들었다.
그렇게 치열하게 공부하고 노력해왔던 지난날의 나에게도 미안했다.

그만 두기 전 날 짝꿍이 말했다.
“왜 굳이 안 될 걸 생각해?”
왜 안 될걸 생각해서, 굳이 들어가지 않아도 될 직장을 들어가고, 굳이 안 겪어도 될 경험을 하냐는 거다.
난 항상 그랬다. 목표는 명확한데, 계속해서 ‘망해서 굶어 죽을 때’를 상상한다. 그리고 그 불안을 피하기 위해 굳이 겪지 않아도 될 경험을 스스로 계속 선택한다. 플랜A를 놔두고 플랜B에서 고통 받는다.
이제는 알았다. 불안은 그저 내 발목을 붙잡을 뿐이다.
부정적인 생각을 버려야겠다. 사람은 생각보다 쉽게 죽지 않는다.
망하는 걸 걱정할 시간에, 남들보다 잘하는 것에 집중하는 게 내 인생에 더 도움 될 거다.
그것이 내가 가야 할 길이다.